top of page
dear - nanase
00:00

탕─! 요란한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조직원들은 그 소리에 미치겠다는 표정이 올라오는 것을 숨길 수가 없어,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또냐. 웬만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이쯤 되니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닥을 향해 내던진 핸드폰의 액정 유리가 깨져 화면이 산산조각 깨져있었다. 잔뜩 갈라진 화면 안에서 아무런 알림도 떠오르지 않는 핸드폰을 보며 씩씩거리던 이치마츠가 악 다문 잇새로 중얼거렸다.

 

 

“이, 쿠소마츠─…….”

 

 

Sempre Come Ora
언제나 지금처럼
Written by.Angello

 

 

이탈리아에서부터 지부를 넓혀 야쿠자들이 점령한 일본에까지 발을 디딘 카모라의 일본 지부는 카모라 대부의 아들, 이치마츠가 맡고 있었다. 대체 왜 대부의 아들이 일본까지 가서 그 작은 지부를 맡고 있느냐 묻는다면,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그저 그 아들의 어리광 때문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과거에 한 번 거래 때문에 잠시 일본에 갔다 온 이치마츠가 이탈리아에 돌아오더니 밤낮 가리지 않고 대부를 졸랐기 때문이었다. 잠은 물론이고 식사도, 일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달린 대부는 결국 마음대로 하라며 일본 지부에 그의 아들을 발령 보냈다. 그래도 제 하나뿐인 아들인지라 외국에 나 몰라라 떨궈놓기가 불안했는지, 이탈리아에서 그를 따르던 조직원들 몇을 붙여서 보내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저렇게 일본을 가야겠다고 우기는 걸까 궁금해 했던 조직원들은 현재 상황에 그저 한숨과 함께 눈물을 삼키며 저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날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조직에 관련된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연애 때문에 여기까지 오겠다고 그렇게 대부를 괴롭힌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뿐인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왔으면 연애를 좀 조용히나 할 것이지, 뭘 그렇게 매일같이 화내고 짜증내고 성질을 내는지. 옆에서 한 두 번은 군말 없이 받아주던 조직원들은 이젠 머리끝까지 짜증이 차올라 더는 받아줄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 그러나 한 번 짜증에 못 이겨 그럴 거면 그냥 헤어지는 게 어떻겠냐는 한 조직원의 충고에, 그 녀석을 완전히 반시체로 만들어버린 이치마츠를 보고 다른 녀석들은 아무리 짜증이 나도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다짐했다. 짜증이 나서 화병 때문에 죽을 것 같더라도, 적어도 화병으로 죽을 확률이 이치마츠에게 맞아 죽을 확률보다는 낮았다. 아무리 짜증이 나도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이치마츠의 연인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아니, 그저 평범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심한 워커홀릭인 느낌이 있지만, 어쨌든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간덩이가 부은 건지, 아무리 그래도 마피아인 이치마츠를 무서워하기는커녕 길가의 돌맹이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했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이치마츠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은 짜증났지만, 그래도 왜 이치마츠가 화가 났는지, 조직원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장장 2주 동안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고 바쁘다며 회사에만 매달린 이치마츠의 연인이, 이번엔 데이트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카라마츠가 피곤해 감기려는 눈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억누른 하품을 내뱉었다. 눈이 빠져 나올 것처럼 아파 깊게 감았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아직도 처리해야 할 파일이 산더미였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마실까.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책상 밑 쓰레기통을 내려다보니 오늘만 3잔을 비워낸 아메리카노의 빈 컵이 쌓여있었다. 이쯤이면 커피가 주식이라고 말해도 될 수준이었다. 쓰레기통 안은 그 동안 해치운 커피의 플라스틱 컵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껍데기만 가득이었다. 원체 일이 많은 회사였고, 입사한지 몇 년이 넘어가지만 그래도 이 피곤에는 익숙해지질 않았다. 사라지기는커녕 쌓여만 가는 피곤에 다크서클이 코 밑까지 내려온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시 식힐 겸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자 문자가 한가득이었다. 전에 하도 쉬지 않고 전화를 하는 통에 거래처의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일할 때는 전화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뒀더니, 그 뒤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늘 문자로만 그것을 표현해내고는 했다. 어쩐지 그것이 조금은 저를 미안하게 만들어,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 움직이려던 손가락을 순간 멈추며 생각했다. 굳이 연락을 해봤자 어차피 만나지도 못할 거, 괜히 화만 더 돋굴 텐데. 또 싸우고 거기에 시간과 감정을 소비할 바에는 차라리 일을 전부 끝마친 다음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연락을 하고 만나서 화해를 하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한 카라마츠가 핸드폰을 다시 뒤집어 놓으며 컴퓨터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그리고 나서 연락하자. 그렇게 결심한 카라마츠가 감기려는 눈에 힘을 줘 부릅뜨며 손을 움직였다.

 

 

 

 

 

 

 

::

 

 

 

 

 

 

 

뭐하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 이치마츠가 갈라진 액정을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며 확인했다. 그러나 여전히 카라마츠에게서 들어온 연락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대체 뭐하자는 건데.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내볼까 고민하던 이치마츠가 핸드폰을 제 무릎에 툭 내려놓으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그의 이런 무관심한 반응이 저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제가 밀어붙여 반강제로 이루어진 관계이긴 했어도 엄연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연인이었다. 늘 혼자만 매달리는 것이 싫은 게 아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제 자존심을 그 정도도 꺾지 못할 정도로만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일방적인 통보와 무시만 해주지 않는다면, 분명 이치마츠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버림받은 애완동물의 기분이나 느끼자고 몇 년을 제 아버지를 졸라 일본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대체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해. 완전히 꺼져들지 못한 자존심이 외쳤다. 그러나 차마 제 자존심을 카라마츠에게 표현해낼 수도 없었다. 지는 것은 늘 자신이었다. 원래 더 좋아하는 쪽이 질 수밖에 없어요. 조직원들은 제게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도 그 정도야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몰아붙였다가 그가 이 관계를 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저를 죽였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적어도 말 하나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문자 하나 정도는, 전화 한 통 정도는.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고개를 젖혀 열기를 가라앉힌 이치마츠가 처음 카라마츠와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야쿠자와의 거래가 있어 들렀던 이 일본에서, 잠시 길을 잃어버려 헤매던 제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그가.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이치마츠에게 활짝 웃으며 먼저 제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 미소에 먼저 반했던 것은 이치마츠였다. 그 길로 이탈리아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몇 년을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내며 일본으로 갈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돌아오자마자 먼저 그를 찾았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그를 다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회사 일에 지쳐 피곤에 찌든 그는 이치마츠가 기억하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카라마츠는 제게 맹목적으로 들이대는 이치마츠에게 말했다. 이제는 그런 다정한 척 연기해 줄 힘도 없어. 네가 그 가식적인 친절에 반했다면 착각이었으니까 이제 돌아가. 그에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부정했다. 상관없어. 그 때 내게 손을 내밀었던 건 분명 너였으니까.

 

 

“도착했습니다.”

 

 

차 문을 연 조직원의 말에 회상에서 깨어난 이치마츠가 차에서 내리며 핸드폰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여전히 그에게서의 연락은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걸까. 더 이상 없는 과거의 모습에 매달려 괜히 서로 힘들기만 할 뿐인 건 아닐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을 끊는 것이 힘들었다. 차라리 좋아하지 말 걸. 내가 좋다고 매달리는 사람이 수십인데, 하필 좋아해도 이런 사람을 좋아해서. 조각난 화면에 비치는 얼굴이 울상이었다. 됐다, 그냥 나도 일이나 하자.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집어넣은 이치마츠가 제 앞의 가게 간판을 한 번 확인했다. 자잘한 가게들이야 다른 조직원들이 알아서 관리했지만, 큰 가게는 이치마츠가 직접 돌아보기도 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가게는 말만 그럴 듯하게 써놓은 텐프로 술집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종업원들이 이치마츠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양 떠는 놈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가게를 관리하는 조직원에게 그 동안의 매출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찾자, 그가 헐레벌떡 앞으로 나오며 이치마츠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벌벌 떠는 조직원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의 인사를 무시하고 서류나 가져오라고 말을 꺼내려던 이치마츠가 입을 다물었다. 조직원의 얼굴에 불안의 기색이 가득이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려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질 못하고 해매였다. 어딜 봐도 무슨 일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라 이치마츠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뭐야.”
“예, 예?”
“뭔데 그런 표정이냐고. 무슨 일이야?”

 

 

그러자 조직원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불안한 손을 가만 놔두질 못하고 계속 양손을 맞잡아 비벼댔다. 뭐냐고. 이치마츠의 재촉에 조직원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룸 한쪽으로 시선을 한 번 향했다가 다시 한 번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치마츠의 얼굴에 짜증이 솟아 있었다.

 

 

::

 

 

피곤하다. 카라마츠가 입 꼬리를 억지로 당겨 올리며 생각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 한숨 푹 자고 싶었다. 사실 피곤이 극에 달해 지하철에 타기만 해도 잠이 올 것 같았으나, 적어도 여기서는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자면 안 되기도 했고, 제 앞에서 술에 취해 고함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저보다 나이가 배는 많아 보이는 남자가 앳된 여자를 옆에 끼고서 저속한 말을 쏟아내는 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쁜 말들뿐인데도 불구하고 그 옆에서 꺄르륵대는 여자처럼 웃으며 그것을 듣고 있자니 더 피곤이 몰려왔다. 카라마츠는 개인적으로 이런 접대 문화를 굉장히 싫어했다. 피할 수 있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1순위였으나 이번엔 빼도 박도 못하게 걸려 다시 한 번 카라마츠가 남자의 잔에 술을 따랐다. 차라리 빨리 잠에나 들어라. 머릿속엔 그런 생각이 한가득이었다. 제게도 술을 따라주겠다는 여자에게 거절을 표하며 다시 한 번 거래처의 남자에게 웃어보이자, 술을 한 번에 들이킨 남자가 천박하게 웃으며 여자의 엉덩이를 주물러댔다. 그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힘들어 시선을 슬쩍 다른 곳으로 돌리자, 갑자기 문이 쾅, 하는 굉음을 내며 열렸다. 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이치마츠가 그 앞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뭐야.”

 

 

이치마츠가 분노로 덜덜 떨리는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물었다. 뒤에서 다른 조직원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부하로 거느리는 녀석들의 앞에서 벌어진 이 상황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수치심보다도 질투심이 먼저 저를 가득 채웠다. 카라마츠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여자를 험악한 눈길로 확인한 이치마츠가 그대로 성큼 여자에게 다가가 거칠게 그녀의 팔을 붙잡고 카라마츠에게 떨어트렸다.

 

 

 

 

 

 

 

“꺄악!”
“나한텐 연락 하나 없었잖아.”

 

 

내던져진 여자의 비명소리엔 신경 하나 주지 않고 다시 한 번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조직원이 이치마츠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카라마츠가 가게에 와 있다는 말을 그에게 건네자마자, 그대로 눈이 뒤집혀 바로 난입했다. 그런데도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저에게 바로 변명하기는커녕 제 뒤에서 쓰러진 여자를 한 번 바라보는 시선에 이치마츠가 이를 악물었다.

 

 

 

 

 

 

 

“너 저 년이랑 바람났어?”
“뭐?”
“왜 저 년부터 신경을 써? 지금 네 애인이 왜 여기까지 쳐들어왔는지 몰라?”

 

 

 

 

 

 

 

나한테 먼저 변명이라도 하는 게 예의 아냐? 이치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분에 못 이겨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에 카라마츠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사이, 거래처의 남자가 헤롱이는 시선으로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놈은 대체 뭐야?”

 

 

잔뜩 혀가 꼬인 목소리에 그제야 이치마츠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라마츠가 와 있다는 말에 정신이 홱 돌아 쳐들어온 것이었는데, 왠 모르는 중년의 남자가 카라마츠의 앞에 있었다. 뭐야. 작은 목소리로 묻자 카라마츠가 조용히 거래처의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의 대답에 이치마츠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좆같은 밤 문화 접대였어? 그제야 열이 좀 사그라들어 이치마츠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 멍청한 새끼는 왜 접대 때문에 왔다는 말을 안 한 거야. 괜히 제 섣부른 판단 때문에 카라마츠의 일을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이치마츠가 제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떡하지. 이것 때문에 나한테 질려버렸으면, 나는……. 당장이라도 사과하기 위해 카라마츠에게 말을 건네려하자, 그 사이를 막고 다시 한 번 술에 취한 목소리가 이치마츠에게 외쳤다.

 

 

“남창이야?”

 

 

헉. 누군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한 사람에게서만 터져나왔다기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직원들도, 이치마츠의 정체를 아는 여자들의 표정도 모두 경악으로 굳어있었다. 이치마츠가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질 않는지 남자가 이치마츠를 향해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제를 알아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려?”

 

 

남자가 저속한 말을 섞으며 성희롱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문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직원들이 남자의 입을 막기 위해 쳐들어가려 하자, 이치마츠가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린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대부의 아들로 권력자의 위치에서 살아온 제게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으나, 상대가 카라마츠의 거래처였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일을 망쳤는데, 여기서 더 망칠 수는 없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들어갈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쥔 이치마츠가 제 입술을 악물며 저속한 말들을 한 귀로 흘려내었다. 그러자 그것이 더 만만하게 보였는지, 할 수 있는 모든 천박한 말은 전부 쏟아내던 남자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이치마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얼마나 천박한 엉덩이길래 그렇게 그 새를 못 참고─…!”

 

 

촤악! 이치마츠의 엉덩이 쪽으로 손을 뻗으려던 남자에게 술이 끼얹어졌다. 남자의 잔에 차있던 술을 뿌린 카라마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젖은 제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술을 끼얹은 것이 누구인지 확인한 남자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치마츠도 놀란 얼굴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네, 네 녀석…!”
“제 애인입니다.”

 

 

카라마츠가 남자의 말을 잘라내고 말했다. 이치마츠가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남자가 카라마츠에게 삿대질 하며 욕을 내뱉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욕설을 무시한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다가가려는 때였다.

 

 

 

 

 

 

 

“저 남창 새끼 때문에 지금─!”

 

 

 

 

 

 

 

챙그랑! 이번에는 벽에 부딪친 술병이 와장창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제 얼굴 바로 옆에서 조각난 술병의 파편이 튀어 얼굴을 베인 남자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주르륵,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남자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 본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남의 애인에게 함부로 그 더러운 주둥이 놀리지 마시죠, 이 개새끼야.”

 

 

처음으로 들어보는 카라마츠의 욕설에 이치마츠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카라마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런 이치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가 말했다. 가자. 그대로 이치마츠를 끌고 문 밖으로 나가자, 그 사이에 몰려있던 조직원들이 주춤이며 길을 터주었다. 어떡하지, 따라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조직원들은 곧 카라마츠에게 붙잡혀 끌려가면서도 새빨개져 감동에 젖은 얼굴로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새삼 반했다는 듯이 바라보는 이치마츠를 확인하고는 따라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이번 사랑싸움도 이렇게 허무하게 결말이 났다. 그래도 이왕 화해한 거 제발 최대한 오래 유지 좀 해라. 고개를 절레 저으며 생각한 조직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해서 히끅거리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들의 보스를 모욕한 대가를 갚아줘야 할 시간이었다.

 

 

::

 

 

“이, 이래도 괜찮아?”
“몰라.”

 

 

그럼 안 괜찮은 거잖아! 이치마츠가 발에 힘을 줘 멈춰 서자, 카라마츠가 함께 걸음을 멈추며 이치마츠를 돌아보았다. 사실 카라마츠도 욱해서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에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거래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으려 했으나 이치마츠에게 손을 대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술을 끼얹어버렸다. 이미 뒤엎어버린 거, 그 뒤의 술병을 깨는 일 따위엔 조금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았다. 제 일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죄책감으로 물든 이치마츠를 내려다보던 카라마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일이 끝날 기미가 안 보여서, 다 끝나고 나면 연락할 생각이었어.”
“…뭐?”
“괜히 만날 수도 없는데 연락하는 것보다는, 일이 끝나고 연락을 한 다음에 바로 만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카라마츠의 사과에 다시 한 번 이치마츠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일하면서도 계속 생각해주고 있었어? 아까까지 끝을 낼까 고민했던 것이 바보 같아질 정도로 싸그리 사라져버렸다. 입 꼬리가 주체 못하고 올라가려는 것이 느껴져 이치마츠가 그것을 자제하기 위해 얼굴이 꽉 힘을 주었다. 피곤에 물든 카라마츠의 얼굴에 괜히 제 투정이 더 미련해보였다. 그런데도 그 투정을 받아 준 카라마츠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다른 조직원들이 본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혀를 찰 터였지만, 지금의 이치마츠에게는 그랬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카라마츠였다. 그것이 기뻐 입술을 달싹이며 눈을 빛내던 이치마츠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아까 그 새끼, 아니 그 남자는 우리가 처리해줄게.”
“뭐?”

 

 

이탈리아 마피아식 처리라면……. 안 돼. 그건 진짜 안 돼. 카라마츠가 당황해 고개를 젓자, 이치마츠가 제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덧붙였다.

 

 

“그게 아니고, 카라마츠한테 영향이 안 가도록, 알아서 잘 처리할게. 안 죽여.”

 

 

물론 죽이진 않고, 죽인다는 협박을 하겠지만. 사실 조직원들이 저를 따라오지 않은 것을 보니 지금 분명 뭔가 손을 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으나, 이치마츠는 그것을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제 허락 없이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그제야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도 일 바쁜데 계속 재촉해서 미안해. 이치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이치마츠의 조직원들에게 흘려 들은 말로는 제 아버지에게도 한 번도 굽힌 적 없던 사람이라고 했다. 늘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아쉬워해 본 적도, 먼저 손을 내민 적도 없던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랬던 이치마츠가 저에게는 저렇게 맹목적이라며, 잘 좀 부탁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굳이 그 사람들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저를 사랑한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온 몸으로 표현해내는 이치마츠를 싫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이치마츠의 머리를 손으로 매만져 대충 정리한 카라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데이트 할래?”

 

 

어쨌든 네 덕분에 시간이 났으니까. 카라마츠의 권유에 다시 한 번 감동과 애정으로 얼굴을 물들였던 이치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이치마츠의 거부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먼저 대답했다.

 

 

“피곤하잖아. 그냥 우리 집에서 자자.”
“…….”
“아, 물론 그냥 잠만 자는 거 말하는 거야. 그냥 나랑 같이 자자. 양복도 다 준비해 둘 테니까…….”
“─그래.”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잡고 이치마츠가 타고 온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걸어가는 내내,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잠에 들 때까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그 동안에 있었던 일상을 말하며 다음번의 데이트 약속을 계획했다. 먼저 잠에든 카라마츠의 품 안에 안긴 이치마츠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언제나 지금처럼, 이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랬다. 마음도, 사랑도, 붙잡은 손도 놓을 일 없이, 지금처럼만.

 

 

 

 

 

 

 

::

 

 

「출장이야.」
“…뭐?”
「급하게 잡힌 거라, 어쩔 수가 없어.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끊을게.」

 

 

미안. 짤막한 사과와 함께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내려 통화 화면에서 홈 화면으로 되돌아온 것을 확인한 이치마츠가 이를 악물며 핸드폰을 쥔 손을 부들거렸다. 건너편의 테이블에서 카드 게임을 하던 조직원들이 제 손에 들린 패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테이블에서 벗어나 벽 구석으로 슬금슬금 피신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쾅─! 이번에 새로 구매한 핸드폰이 테이블에 한 번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번과 똑같이 액정이 산산조각 난 핸드폰을 노려보며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는 듯이 씩씩거리던 이치마츠가 이를 갈며 그 사이로 외쳤다.

 

 

“이…, 쿠소마츠으으──!”

 

 

조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미치겠다는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또야. 질리지도 않나. 눈짓만으로 서로 의사를 전달한 조직원들이 결국 내뱉지 못하는 한숨을 삼키며 조용히 혀를 찼다.
언제나처럼, 똑같은 일상이었다.

 

 

「Sempre Come Ora」
「언제나 지금처럼」
「FIN」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