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야근>

 

 


 목이 뻐근했다. 카라마츠는 오랜 업무로 굳어진 어깨를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절로 신음이 나온다. 연속으로 야근을 한지 며칠째더라. 카라마츠는 제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을 빤히 바라보았다. 카라마츠 사원, 이라고 쓰여진 줄을 매고 있으니 마치 제 이름이 새겨진 목줄을 매고 있는 개가 된 기분이다. 아니 개도 이것보다는 좋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요새는 얼마나 본인들이 키우는 애완견을 애지중지 하는데. 나는 진짜 말 그대로 노예지, 노예. 개보다도 못한.

 


 잠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다가갔다. 얇은 종이컵을 입으로 후, 불어 벌리고 차가운 물을 따라 마시니 한 층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카라마츠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쭉 펴고 몸을 돌렸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피로가 누적되는 것이 느껴진다.

 


 몸을 이리 저리 돌려 풀고나니 저와 함께 야근을 하고 있던 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창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야하는데 지나치게 조용하다. 카라마츠는 조심스럽게 그 사람의 자리로 다가갔다.

 


 이치마츠 과장, 이라고 쓰여진 사원증이 책상 구석에 냉패겨쳐져 있었다. 일하다가 거슬려 벗어던진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책상 위에 놓여진 사원증에 슬쩍 눈길을 주었다. 세상에 온갖 불만을 품은듯 툴툴거리는 표정의 이치마츠가 사원증 안에 박제되어 있었다. 과장님 답다,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평소의 이치마츠는 굉장히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냥 말수가 적은 것을 떠나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기피했다. 어떻게 과장의 자리까지 올랐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어쩌다가 대화를 나누게 되면 [다가오지마. 날 건드리면 해칠거야.] 라는 기운을 마구 내뿜어서 말을 건네기 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기비하와 낮은 자존감이 똘똘 뭉쳐 있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져서 카라마츠는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까무룩 잠든 것인지 이치마츠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과장님도 많이 피곤하셨구나. 이치마츠는 매사에 열심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친분을 이용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 할 수 없으니 그만큼 더욱 열심히 한 것이겠지. 그게 이치마츠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방식이니까. 그러고보니 지금 사무실의 공기가 조금 찬 거 같은데. 카라마츠는 새삼 차가워진 자신의 손을 비비며 겉옷을 벗었다. 이런데서 잠들면 체온이 떨어진다고요, 과장님.

 


 카라마츠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치마츠의 등에 겉옷을 덮어주었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이치마츠가 크게 한번 움찔거렸다. 카라마츠는 숨을 죽인 채 이치마츠에게서 서둘러 떨어졌다. 잠에서 깨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다행히 이치마츠는 이내 편안해졌는지 고른 숨을 내쉬며 고개를 반대로 했다. 덕분에 이치마츠의 표정이 한층 잘보이게 되었다. 무슨 용기가 난 것인지 카라마츠는 조심스레 얼굴을 가까이 하고 이치마츠의 얼굴을 살폈다. 

 


깊은 잠에 빠져 풀어진 모습이 조금 신선하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새하얀 피부와 기다란 속눈썹, 평소보다 처져 있는 숱없는 눈썹. 오똑한 콧날을 지나 도톰한 입술까지 시선이 닿자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다. 어라,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카라마츠는 알 수 없는 끌림에 서서히 이치마츠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까이 했다. 그리고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이제 닿는다.

 


 "……여, 여기서 뭐하는거야?!"

 


 "으, 으아아아! 과장님!"

 


 "아니, 왜 너가 더 놀라는거야? 내가 놀랄 상황 아니야? 방금 뭐하려던 건데? 나 괴롭히려고 그런거지?"

 


 겁에 질렸는지 이치마츠의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 와중에도 제가 덮어준 겉옷을 꼭 쥐고 있는 손이 앙증 맞아서 카라마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뇨, 과장님 그게 아니라요……. 제가 왜 과장님을 괴롭혀요! 그, 저는 과장님이 주무시길래 추워보이시고 해서 겉옷을."

 


 카라마츠가 횡설수설하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어깨 위에 있던 겉옷의 존재를 알아차린듯 이치마츠가 (더러운 것을 쥐는 것처럼) 서둘러 그것을 건넸다. 카라마츠는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겉옷을 받아들었다. 이제 어떡하지.

 


 "그, 그런덕 왜 그렇게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어? 아, 호,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 처음봐서? 사람 같지도 않게 생긴게 있어서 신기했던거야?"

 


 도대체 이 사람의 자기비하는 어디까지인걸까.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금세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이 카라마츠를 향했다. 카라마츠는 결심한 듯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을 뱉었다.

 


 "과장님이 너무 아름다우셔서요. 너무 예쁘게 생기셔서 저도 모르게 키스 할뻔 했어요."

 


 카라마츠의 말을 들은 이치마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당황했는지 제대로 된 말을 못한 채 계속해서 거, 거짓말이지? 하고 반복한다.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그대로 전달된다. 혹시 내가 더 상처를 줘버린 것일까. 카라마츠는 갑자기 덜컥 겁이나 이치마츠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그……."

 


 "네?"

 


 "그, 키스할 뻔 했다는거, 진짜야?"

 


 아아. 카라마츠의 얼굴에 스르륵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 이치마츠는 굉장히 기뻐하고 있구나. 카라마츠는 벅찬 감정이 샘솟는 것을 꾹 눌러 참은 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치마츠의 눈이 한 층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지금, 해도 되요?"

 


 "뭐, 뭐라고?"

 


 "키스요. 해도 되요?"

 


 카라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결국 결심했는지 두 눈을 꾹 감았다. 아, 사랑스러워. 카라마츠는 자신이 탐내왔던 그 붉고 도톰한 입술에 제 입을 가져다 댔다. 마치 붉은 과일의 과즙을 마시는 것 같이 달콤함이 전신에 퍼졌다.

 


 야근을 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전처럼 괴롭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카라마츠 사원의 곁에는 늘 열심히 하는 이치마츠 과장님이 함께 있을거니까.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