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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_Canival - Unknown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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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나의 이야기
카포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소심함과 찌질함의 극치였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좋아하는 상대를 싫어하는 상대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고등학교 시절 내가 좋아하던 상대는 다름 아닌 내 남자형제, 카라마츠였다. 그에 대한 마음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으나 그 상대에게 했던 내 행동들이 요즈음 밤마다 계속해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불러일으키므로 난 찌질하고 소심한 남자라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 찌질하고 소심한 나의 시선은 언제나 카라마츠의 교복 상의에 달린 두 번째 단추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 교복은 두 번째 단추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옛날의 교복과는 먼 ‘현대적인’ 디자인이었다. 그럼에도 내 시선이 차마 카라마츠의 상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나 특히 두 번째 단추에 아주 정신이 팔려있던 이유는 카라마츠가 내게 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상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창 사춘기를 겪는 남자애의 답으로 대개 긴 생머리나 흰 피부를 좋아한다는 등의 그렇고 그런 것을 말하기 마련인데 우리 육형제 중에서도 ‘특별함’을 간판으로 내세우던 놈은 역시나 달랐는지 ‘두 번째 단추를 원하는 애’라고 답했다. 그런 답을 내놓은 카라마츠나 그것을 마지막 동아줄쯤으로 여긴 나나 둘 다 정상이 아니었다. 내가 카라마츠의 두 번째 단추를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카라마츠가 나를 ‘특별히’ 이성으로 볼 리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카라마츠 역시 진짜 그런 여자애를 자신의 애인 삼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맹신하고 만 나는 더더욱 카라마츠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는데 이유야 무엇이든 당시의 나는 그것을 ‘승부욕’이라고 표현했다. 그리하여 카라마츠에게 닿는 내 시선은 그렇게 끈덕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안도감이 드나,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먼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던 카라마츠가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는 점에서는 다시금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고개를 쳐들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를 대하던 카라마츠의 행동을 다시 기억해내노라면 그때의 카라마츠 역시 나만큼 아주 소심하지는 않았으나 나름 소심한 놈이었음에는 분명했다. 그때의 카라마츠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다. 내 고등학교 시절의 전부였던 놈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열정을 느꼈던 상대이기도 한, 내 남자형제 놈.  
  카라마츠는 아주 가끔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내 방향 쪽에 있는 무언가를 보려는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내 쪽으로 틀을 때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는 한편으로는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카라마츠가 나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끈덕지고 불쾌한 감정으로 가득한 욕망 그 비슷한 무언가……. 물론 카라마츠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것일 리는 없으므로 나는 곧 실망이나 불쾌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정작 불쾌한 쪽은 나 자신이 카라마츠의 시선을 왜곡되게 느낄 때였다. 이를테면 카라마츠의 시선이 날 향해 있다는 식으로, 곧 그 짓은 불쾌하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점점 내 시선이 카라마츠를 향해 있지 않는 척 하는 둥 점점 머리를 쓰기 시작했으나 카라마츠는 멍청한 것인지 그것도 그의 ‘특별함’ 중 하나였던 것인지 그의 행동은 언제나 똑같기 그지없었다. 나는 카라마츠의 두 번째 단추를 보고 있는 척 하면서도 카라마츠를 보고 있기 일쑤였는데 나는 그 순간마저도 이것이 하나의 ‘승부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저버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내 험상궂은 시선과 마주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것의 그의 변하지 않는 행동 중 하나였다. 형제들은 그런 카라마츠를 두고 시선만으로 쫄리는 한심한 놈이라고 놀려댔는데 정작 놀림을 받아야 할 것은 나였음에도 나는 그때마다 가장 큰 소리로 카라마츠를 비웃어댔다. 그 자리에 있던 카라마츠는 내 웃음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지금 와서도 그게 기억이 나곤 하는데 나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랬던 카라마츠는 의외로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아마 당시의 놈이 연극부에 든 탓도 있었을 것이다. 형제들의 얼굴은 그다지 꿀리지 않았으므로 그렇다 쳐도 놈의 소심한 그 성격은 어째서인지 여자애들 사이에서 장점으로 통했다. 카라마츠를 제외한 연극부 단원들이 하나같이 거만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에 비해 카라마츠는 유순한 편이었고 연극부 남자친구를 사귀는 상상을 한 번쯤 해 본 여자애들이 카라마츠를 노린 것은 당연지사였다. 실제로 놈은 고백을 몇 번 받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방이나 골목에 처박혀 울었다. 다행인 점은 그가 모든 고백을 거절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놈이 그 고백에 대한 거절의 답을 내놓을 때마다 비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당시 카라마츠가 어째서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언제나 결론은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상상을 고양이에게만 몰래 자랑했다. 골목에서 친해진 고양이었다.
  카라마츠에게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물론 그 대상이 여자애라고 특정지은 적은 없지만 아마도 여자애였다. 웃는 게 예쁜 사람은 대개 여자애고 매일 자신을 쳐다보는 애도 여자애고 눈이 마주치는 애도 여자애고 무섭게 대하는 애도 여자애고……모든 가정은 여자애에서 시작되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얘기를 자랑스럽게 모든 형제가 있는 곳에서 말했다. 그날은 특히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는 횟수가 많았는데 비참해도 그런 비참할 데가 없었다. 나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나는 그 많은 형제들이 있는 곳에서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다. 너 같은 놈, 나도 안 좋아 한다……라니. 
  그 사건이 있고나서 나는 내 마음에 대해 약간이나마 자각했다. 같은 남자형제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나 카라마츠에게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사실들은 내게 있어서는 현실이었기에 나는 줄곧 일종의 도피처인 골목에서 고양이와 대화하며 지냈다. 말이 대화지, 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형제들과도 잘 얘기하지 않게 되었다. 상담을 요청 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지만 형제들의 말로는 카라마츠는 하루에 한 번씩 날 찾기 위해 내 반에 들렸다고 했다. 그래봤자 모두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찌질함과 소심함의 극치를 달렸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의외로 순애보였던 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할 여지도 없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접을만한 여지 하나는 있었다. 
  내가 카라마츠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된 결정적 계기는 졸업식 날로부터 비롯되었다. 원래라면 내가 가장 꿈꾸던 날이었다. 가장 절망스러운 날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카라마츠를 피해 다녔다. “이치마츠!” 나는 아직도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카라마츠는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여자애였다.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의 뒤로 카라마츠가 보였다. 제법 당차보였던 여자애의 걸걸한 목소리가 기억난다. “네 두 번째 단추 가지고 싶어!”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했던 것일까. 여자애가 카라마츠가 좋아하던 그 애인지 가늠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둘이 내기를 해 나를 골탕 먹이려 한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찾아야 했던 것일까. “이, 이치마츠 미안하다!” 뒤따라 카라마츠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므로 당장 카라마츠를 피해 달아나야 했을까. 당시의 나는 소심함과 찌질함의 극치이며 한심한 남자의 표본이라 불릴 정도의 그런 놈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답을 내놓았다. 나는 냉큼 내 두 번째 단추를 상의에서 뜯은 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가져가던가.” 여자애나 카라마츠의 표정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나는 큰 보폭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지고자 했다. “이치마츠!” 다시 한 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카라마츠였다. 나는 내 행동에 대한 한심함이나 당황스러움이나 후회 등이 뒤섞인 채로 카라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카라마츠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는 것 밖에는 기억나지 않으므로, 내 표정은 꽤나 무서웠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두, 두 번째 단추는 마음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내 마음은 부디 잘 간, 간직해 줘. 네 마음도 같이.” 카라마츠의 손에는 내 것과 그의 단추가 들려 있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푹 숙인 채여서 표정을 잘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나에 대한 그의 연민을 집어 들었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카라마츠에게서 등진 채 더 큰 보폭으로 걸었다. 졸업사진은? 저 멀리서 엄마가 날 부르고 있었으나 난 그대로 교문을 빠져나가 언제나 들렀던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 조심스럽게 내 것과 그의 단추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언젠가 카라마츠가 내게 단추의 행방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소심하고 찌질한 고등학교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잘 간직하고 있어.” 이렇게. 그러면 카라마츠는 조용히 웃겠지. 그러면 나 역시 그를 따라 웃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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